2010. 3. 17. 『문화일보』


<오후여담> 

사실과 허구

 문성웅 /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0-03-17


  방송 드라마 가운데 사극(史劇)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끄는 편이다. 요즘 들어 ‘용의 눈물’이나 ‘왕과 비’같은 정치 사극은 뵈지 않지만 ‘추노’ ‘제중원’ ‘거상 김만덕’ 등 역사적 내용을 토대로 한 드라마가 방영중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드라마 작가의 상상력은 몇줄의 기록을 토대로, 흥미롭고 감동적인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사극이 인기를 끌수록, 중·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진땀을 뺀다. 드라마와 역사를 혼동한 학생들이 수업마다 생뚱맞은 질문공세를 퍼붓기 때문이다. “신윤복은 도화서에 들어가 왜 남자인 척하면서 그림을 그렸나요?”하는 식이다. 조선후기 풍속화가인 신윤복을 남장(男裝)여자로 그린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영되던 당시, 그런 유의 질문이 빗발쳤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기발한 착상을 해냈다. 드라마속 역사적 내용에 대해 ‘사실’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서비스에 나섰다. 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첫 주제로 포착한 ‘추노, 그 이야기속의 사실과 허구’는 조회수가 무려 10만건에 육박하고 있다. 관련 코너에는 ‘추노꾼이 정말 존재했을까’ ‘노비, 어떻게 도망가고 어떻게 잡혀왔을까’ ‘소현세자는 독살되었을까’ 등 11개 질문을 설정해 인문학자들의 답변과 관련 근거를 자세히 곁들이고 있다. 예컨대 드라마 추노에서 인생 역전에 성공한 대목이 나온다. 대길의 집안에서 노비로 살아가던 큰놈이(조재완)와 언년이(이다해)가 주인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칠 때 훔친 돈으로 행상을 시작해 어엿한 장사치로서 제법 풍족한 가정을 꾸린다. 이를 조선 영조때 실존인물 ‘엄택주’의 사례를 들어 뒷받침하고, ‘조선왕조실록’과 ‘국조문과방목’을 근거문헌으로 제시했다.

  이토록 눈물겨운 ‘사실과 허구’서비스를 교육당국은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필수과목이던 고교 1학년의 역사를 선택으로 변경하고, 고교 2~3학년 역사 과목 중 한국문화사를 아예 제외한 채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역시 선택과목으로 결정했다. 역사 수업을 한 시간도 듣지 않고 고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적잖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역사속에 담긴 지혜와 교훈을 전해줄 역사교육이 위축돼선 안된다. 사극 보는 재미도 역사를 제대로 알아갈수록 커지는 법이다.